Engine idling

오늘 오랫동안 묵어있던 생각 조각들을 정리했다. 종이에 적힌 것들이었는데 하나씩 모두 살펴보고 대부분 버렸다. 생각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많다.


undefined



돌아보면 나는 창업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최적화는 좋아하는데, 초기의 불완전한 모습을 못견뎌 했다. 처음부터 완전할 수는 없는데. iPhone도 처음 나왔을 때는 구렸다.

빠른 시일 내에 ‘거의 완전한 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더군다나 나는 기준이 높았다. 모든 게 구비되어야만 누군가를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궁극적으로는 그 모든 게 있어야 함이 옳을 수 있따. 다만 단계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단계를 애써 무시하려 했다. 내가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 Fake Steve Jobs였다.


그래서 시작이 안됐다. 공회전 오래하면서 연료를 쓰니까, ‘아 이거 밟아도 안나가는데? 연료만 나가는데?’ 같은 생각이 무의식을 지배했다. 밟아도 앞으로 안가는데 연료는 소모됐다. 그래서 엑셀에 발을 갖다 대기가 두려웠다. 연료칸을 보니까 연료가 얼마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Self convincing First

처음 시작할 때를 생각해보자. 자기 확신이 강하면,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의 감정적 runway가 길어진다. 따라서, 숱한 거절을 견디고 결국 ‘yes!’라고 외치는 누군가에게서 큰 단서를 얻어낼 수 있다.

반대로, 강한 자기확신이 없으면 숱한 거절을 견뎌낼 연료가 충분치 않다. 거절을 견뎌내며 초기 ideal customer를 발견할 만큼 충분한 시행을 하지 못하게 될 확률이 높다.


Michael Seibei이 그랬다. 머리카탁이 불타고 있는 고객을 찾으라고. MVP가 물이 아니라 설령 ‘벽돌’일 지라도 그 사람 입장에서는 머리카락이 타는 것보다야 벽돌로 머리를 치면서 불을 끄는게 맞으니까. 벽돌 다른 형태로 바꿔나가는 건 그 다음이다.

말 그대로 Mininum Viable Product이기에 불완전할 것이다. 그 제품에 완벽히 맞는 사람을 찾는 건 그래서 어렵다. 문제에는 공감을 해도, 해당 제품에는 공감 못할 가능성이 크다. 여전히 부족하니까. 그런데 그 부족함에도 사용을 기꺼이 원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수 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배터리 수명이 닳는 것처럼, 시행한 도전에 충분한 output이 없으면 에너지 총량이 낮아질 수 있다. 도전 주체는 사람이기 때문에. 완충해도 저번의 80%밖에 안되는 꼴. 그걸 반복하면 충전 자체가 안되는 ‘번아웃’ 순간이 올 수 있으니 조심해야한다.


선순환, 악순환이란 단어에 괜히 ‘순환’이 있는 게 아니다. 계속해서 좋아지거나, 계속해서 안좋아지는 위험한 현상이다. 건강한 것을 먹다보며 계속해서 건강한 것을 찾게 된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늦게 자고, 운동을 미루면 계속해서 귀찮아지고 대충 먹게 된다. 지속하면 관성이 생기고 습관이 된다.



Burnout

올해 초는 특히나 위태로웠다. 팀이 깨지고 계획은 틀어졌다. 얼마나 힘들었냐면 침대에서 일어나는게 버거울 정도였다. 부정적 생각이 가득하여 유튜브에서 ‘성공확언’같은 걸 찾아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의 날들을 돌이켜보면 항상 뭐가 잘 안됐다. 잘 안된 것만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목표로 하는 것들은 잘 안됐다.

대학교 입학하고 코로나가 터졌고, SOPT부터해서 지원한 연합 동아리는 지원 족족 다 떨어졌다. 고등학교 때 프로젝트 같이했던 동료와 공모전을 넣었는데 예선탈락했고, EY한영에서 했던 대회는 내가 왜 그랬는 지 모르겠는데 드랍했다. (내가 나가고 그 팀은 최우수상 받았다.) 그 이후로도, 예창패처럼 뭐가 돼서 내가 합류하면 다 꼴아박았다. 피해망상이 아니라 진짜로!


군에 입대하고, 소방서에서 생활하면서 나와 마주할 시간이 많았다. 그 동안의 실패에 대해 돌아봤다. 결국 내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 그리고 운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고 조용히 내 실력을 쌓아나가고자 했다. 나는 여전히 정주영 회장 같은 도전적인, 세상을 바꾸는 기업가가 되고 싶었다.

전역 전부터 시작해서(휴가씀), 포스텍에서 Apple Developer Academy 생활을 9개월 정도 했다. 창업하고 싶었는데, 확신이 없었다. 다 별로였고 타당해보이지 않았다. 전역 후 내 두뇌에는 여러가지 기준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박지웅씨 등등.. 구조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고 나름 노력을 많이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빡빡한 기준들이 나의 실행을 막아섰다. 안 될 것 같으니 재미있을 리 있나.


그래도 좋은 동료들을 만났다. 서울에 올라와 무언가를 해보려 노력했으나 앞서 언급했듯 팀이 깨졌다. 내 기준에 ‘배합이 안맞는 팀’이라고 여겨졌다. 우리 팀 멤버들이 지닌 기회비용도 생각보다 컸다. 때문에 팀은 해체 수순을 밟았다. 그게 올해 1월 16일이었을 거다.



내가 옳았을 수 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

그렇다. 맞으면 아프다. 그동안 나는 너무 아팠다. 그래서 안 맞고 싶었다. 나에게 확신없이 시작하는 건, 또 무방비하게 쳐맞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우선 나에 대한 확신부터 있어야 했다. ‘나 준비됐을까?’에서 막히면 나는 시작할 수 없었다. ‘이봐, 해봤어?’ 이 말도 맞긴 한데.. 자원은 유한하니까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감정적 연료가 모두 소진되어 버렸다. 학교로 들어갔다. 코로나 터지고 군대갔다가 바로 포스텍으로 갔었어서, 우리 학교 캠퍼스에서는 수업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가히 미친 사람처럼 살았다. 한이 맺혀있었다. 나는 무조건 재미있게 놀아야했고, 대학생이 응당 해야할 것들을 행해야했다. 동아리를 여섯 개 했다. 댄스도 하고, 밴드도 하고, 디제잉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뭐 일주일 내내 스케줄이 박혀있었다. 거기다가 돈도 벌어야 해서 일도 했다. 수업도 들었고, 파티나 술자리도 가야했다. 학교 축제가서 뉴진스도 봐야했다. ‘우주유영’이라고 250명 규모의 네트워킹 행사도 치렀다.


샤워하면서 코피가 흘렀다. 그러려니했다. 다음날 샤워할 때 또 흘렀다. 피곤하구나 했다. 그런데 3일 째에도 코피가 나길래 이거 무슨 문제가 생긴건가 무서웠다. 다행히 지금까지 별 이상은 없지만 그 정도로 피곤하게 살았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했나 싶다.

그렇게 정신놓고 살다가도 문득 나의 커리어와 야망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다. 리부트 하고 싶었다. 그럴 요량으로 저번 학기에 SOPT에 들어갔다. 당시에 ‘젊고 유능한 야망있는 사람’을 만나고자 했고 간절함이 묻어있었다. 예상치도 못한 게 기회가 될 수 있고, 절실했던 것이 사실 그리 좋은 기회가 아니었을 수 있다. 그러려니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어쨌든, 스타트업은 어렵다. 좋은 제품을 만들 훌륭한 팀이 있어야 한다. ‘그냥 적당히 어쩌고 저쩌고’ 하고 싶지 않다. 큰 임팩트를 만들고 싶다. 확신이 들지 않아서 시작하지 못했다. ‘시작하지 못함’에 초점을 맞춰버리면 책상 앞에서 ‘이렇게 해야한다’ 논평만 하는 헛똑똑이처럼 스스로가 느껴진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기준 충족이 안되었으니 출발을 못한 게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시동이 안 걸렸던 이유

나는 ‘어떤 문제든 그냥 그걸 해결하는게 좋아’ 같은 인간군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가 공감하는 문제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어떻게 바꿔낼 것인지에 대한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구체적으로 그려져야 한다. 그래야 딥다이브가 가능한 사람이다.

세상이 너무 편리했다. 딱히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보이지 않았고, 뭔가 느껴지더라도 ‘이걸 내가 했을 때의 경쟁우위가 뭔데? 이거 왜 내가 해야하는데?’ 라고 물었을 때 답할 수 없었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더라도 그걸 10년이라는 시간으로 줌아웃해서 봤을 때 살아남는 회사는 몇 없다.

모든 것을 예측하고 들어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decade 관점에서 잘 해내는 플레이어가 되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 ‘되면 좋고 아님 말고, 경험쌓지 뭐’ 이 생각의 반대 극단에 있는 것이다.


1. 내가 공감하는 문제인가?
2. 자체 개발해서 해결가능한 문제인가?
3. Day1부터 매출이 있는 모델인가?
4.


위 기준을 만족하는 도메인이 ‘생산성’ 중에서 ‘할 일 및 일정 관리’ 장르였다. 나는 되게 다양한 일을 동시에 진행하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어떤 일을 진행 중인 지, 어떤 일을 완료했는 지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애플 캘린더/미리알림은 당시에 분리되어 있었고, 루틴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게이미피케이션’을 접목시켜서 성취감을 고취시키고, 대쉬보드를 제공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면 어떨까? 라고 생각했다. 초기 이름은 ‘Plannery’였고, 그게 나중에 ‘NutShell’로 바뀌었다.

그런데 왜지. 재미가 없었다. 이게 있다고 해서 누군가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뀔 것 같지도, 반대로 말해서 없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 같지 않았다. Pain Killer와 Vitamin. 이 두 개로 나눠서 생각하는 거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데 Vitamin 중에서도 굉장히 마이너한 Vitamin같았다.

그리고 ‘Why now’도 모르겠었다. 현재 Gen AI에 돈이 몰리고 기술이 계속해서 발전되며 민주화되고 있는데, 이를테면 ‘축제’가 열리고 있는데 나는 저 멀리 뒷골목에서 혼자 다른 것에 골몰하려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엘리트 비즈니스다.

능률에 몰빵을 치는거다. 적은 인원이면 소통비용이 구조적으로 적어진다. 의사결정도 빠르다. 이게 스타트업의 본질이다. 노동에 대한 대가가 Monthly Income이 아니라 Equity가 되기 때문에 열심히 할 동인도 충분하다. 주에 몇 시간까지 일해야한다? 뭐 이런 논의가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고 무조건 목표 하나보고 달리는 거다.

블로그에 ‘할 것’들을 많이 적어놓았던 것 같다. 다짐하듯.. 근데 그거는 별 의미 없는 것 같고 그냥 어떤 거 했는 지 기록한 게 더 유익한 것 같다.


함께할 사람을 찾았다. 뭐 ‘찾아야겠다’하고 찾은 건 아니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다. 똑똑하다. technical한 사람이다. 친하고, 일년 반을 같은 공간에서 살았다. 난 사업 개발, 디자인 자신있고 코파운더는 만들고 구현하는거 자신있다. 우선 두 명이서 출발하고자 한다.

무엇을 할 지 정했다. 생산성 B2C SaaS다. 여러 정보와 생각들을 정리해서 자료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돕는다. 브레인스토밍에 적합한 Figma와 같은 ‘캔버스 뷰’에서 여러 자료들과 생각을 펼쳐놓고 정리할 수 있다. 정리한 정보들은 구조에 맞게 Notion처럼 저장되고, 자산화시킬 수 있다.


뼈맞음

Surveys might help to understand the pain that your customer is going through, but they will never help you figure out how to solve the pain.


그렇다. 문제를 포착했으면, 그리고 그 문제를 겪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 일단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 만들어내야 한다. 최대한 빨리! 그리고 나서 그걸 들고 돌면서 사람들에게 물어봐야한다.

‘만약 내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어봤다면 그들은 더 빠른 말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 Henry Ford

이 말의 의미를 이제 알겠다. 사람들에게 솔루션을 물으면 안된다. ①불편한 상황을 서베이하고, ②해당 문제가 해결할만 하다라는 결론이 나면 빠르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디자인하고 만들고 있다. 그 이후에 돌아다니면서 ‘이게 당신의 문제를 잘 해결하는 지’에 대해 묻고 PMF Survey를 진행하는 이터레이션을 돌아야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만드는 역량은 오롯이 팀에 달려있다. 나는 스스로를 ‘UX에 까다로운 유저’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고민을 많이 담은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이 장르는 UX가 중요하다. 아름다워야 하고 직관적이어야 하며, 편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중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나와 코파운더는 그렇기에 좋은 소프트웨어 제품을 만들어낼 역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년엔 가파른 성장을 해내고 싶다. 공회전을 멈추고 앞으로 질주하면서 나도 사실은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증명해보이는 것이 목표다. 그렇게 커리어적 불안과 경제적 불안에서 조금은 멀어지며,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크게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면서 말이다.


전역할 때 즈음 세운 계획에 2024년에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를 하고 본격적으로 창업에 뛰어들고 싶다고 적어놓았다. 그리고 올해 초에도 2024년이 나에게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고, 올해도 방향 못잡고 허우적대면 그냥 나는 털어버리고 다른 쪽으로 알아봐야겠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반점이든 마침표든 찍는 계기가 분명해야한다. 흐지부지되는 건 그동안의 시간이 포장되지 않는 것이니 나에게 손해이다.


시간 빠르다. 작년 12월 15일에 이 집에 들어왔고 벌써 3주 뒤면 만 1년이 된다. 혼란과 헤멤 끝에 결실이 있다면 ‘지옥길을 걷고 있다면 계속해서 전진하라’라는 말에 수긍하며 나아갈 것이다.

Engine idling

오늘 오랫동안 묵어있던 생각 조각들을 정리했다. 종이에 적힌 것들이었는데 하나씩 모두 살펴보고 대부분 버렸다. 생각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많다.


undefined



돌아보면 나는 창업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최적화는 좋아하는데, 초기의 불완전한 모습을 못견뎌 했다. 처음부터 완전할 수는 없는데. iPhone도 처음 나왔을 때는 구렸다.

빠른 시일 내에 ‘거의 완전한 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더군다나 나는 기준이 높았다. 모든 게 구비되어야만 누군가를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궁극적으로는 그 모든 게 있어야 함이 옳을 수 있따. 다만 단계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단계를 애써 무시하려 했다. 내가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 Fake Steve Jobs였다.


그래서 시작이 안됐다. 공회전 오래하면서 연료를 쓰니까, ‘아 이거 밟아도 안나가는데? 연료만 나가는데?’ 같은 생각이 무의식을 지배했다. 밟아도 앞으로 안가는데 연료는 소모됐다. 그래서 엑셀에 발을 갖다 대기가 두려웠다. 연료칸을 보니까 연료가 얼마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Self convincing First

처음 시작할 때를 생각해보자. 자기 확신이 강하면,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의 감정적 runway가 길어진다. 따라서, 숱한 거절을 견디고 결국 ‘yes!’라고 외치는 누군가에게서 큰 단서를 얻어낼 수 있다.

반대로, 강한 자기확신이 없으면 숱한 거절을 견뎌낼 연료가 충분치 않다. 거절을 견뎌내며 초기 ideal customer를 발견할 만큼 충분한 시행을 하지 못하게 될 확률이 높다.


Michael Seibei이 그랬다. 머리카탁이 불타고 있는 고객을 찾으라고. MVP가 물이 아니라 설령 ‘벽돌’일 지라도 그 사람 입장에서는 머리카락이 타는 것보다야 벽돌로 머리를 치면서 불을 끄는게 맞으니까. 벽돌 다른 형태로 바꿔나가는 건 그 다음이다.

말 그대로 Mininum Viable Product이기에 불완전할 것이다. 그 제품에 완벽히 맞는 사람을 찾는 건 그래서 어렵다. 문제에는 공감을 해도, 해당 제품에는 공감 못할 가능성이 크다. 여전히 부족하니까. 그런데 그 부족함에도 사용을 기꺼이 원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수 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배터리 수명이 닳는 것처럼, 시행한 도전에 충분한 output이 없으면 에너지 총량이 낮아질 수 있다. 도전 주체는 사람이기 때문에. 완충해도 저번의 80%밖에 안되는 꼴. 그걸 반복하면 충전 자체가 안되는 ‘번아웃’ 순간이 올 수 있으니 조심해야한다.


선순환, 악순환이란 단어에 괜히 ‘순환’이 있는 게 아니다. 계속해서 좋아지거나, 계속해서 안좋아지는 위험한 현상이다. 건강한 것을 먹다보며 계속해서 건강한 것을 찾게 된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늦게 자고, 운동을 미루면 계속해서 귀찮아지고 대충 먹게 된다. 지속하면 관성이 생기고 습관이 된다.



Burnout

올해 초는 특히나 위태로웠다. 팀이 깨지고 계획은 틀어졌다. 얼마나 힘들었냐면 침대에서 일어나는게 버거울 정도였다. 부정적 생각이 가득하여 유튜브에서 ‘성공확언’같은 걸 찾아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의 날들을 돌이켜보면 항상 뭐가 잘 안됐다. 잘 안된 것만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목표로 하는 것들은 잘 안됐다.

대학교 입학하고 코로나가 터졌고, SOPT부터해서 지원한 연합 동아리는 지원 족족 다 떨어졌다. 고등학교 때 프로젝트 같이했던 동료와 공모전을 넣었는데 예선탈락했고, EY한영에서 했던 대회는 내가 왜 그랬는 지 모르겠는데 드랍했다. (내가 나가고 그 팀은 최우수상 받았다.) 그 이후로도, 예창패처럼 뭐가 돼서 내가 합류하면 다 꼴아박았다. 피해망상이 아니라 진짜로!


군에 입대하고, 소방서에서 생활하면서 나와 마주할 시간이 많았다. 그 동안의 실패에 대해 돌아봤다. 결국 내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 그리고 운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고 조용히 내 실력을 쌓아나가고자 했다. 나는 여전히 정주영 회장 같은 도전적인, 세상을 바꾸는 기업가가 되고 싶었다.

전역 전부터 시작해서(휴가씀), 포스텍에서 Apple Developer Academy 생활을 9개월 정도 했다. 창업하고 싶었는데, 확신이 없었다. 다 별로였고 타당해보이지 않았다. 전역 후 내 두뇌에는 여러가지 기준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박지웅씨 등등.. 구조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고 나름 노력을 많이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빡빡한 기준들이 나의 실행을 막아섰다. 안 될 것 같으니 재미있을 리 있나.


그래도 좋은 동료들을 만났다. 서울에 올라와 무언가를 해보려 노력했으나 앞서 언급했듯 팀이 깨졌다. 내 기준에 ‘배합이 안맞는 팀’이라고 여겨졌다. 우리 팀 멤버들이 지닌 기회비용도 생각보다 컸다. 때문에 팀은 해체 수순을 밟았다. 그게 올해 1월 16일이었을 거다.



내가 옳았을 수 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

그렇다. 맞으면 아프다. 그동안 나는 너무 아팠다. 그래서 안 맞고 싶었다. 나에게 확신없이 시작하는 건, 또 무방비하게 쳐맞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우선 나에 대한 확신부터 있어야 했다. ‘나 준비됐을까?’에서 막히면 나는 시작할 수 없었다. ‘이봐, 해봤어?’ 이 말도 맞긴 한데.. 자원은 유한하니까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감정적 연료가 모두 소진되어 버렸다. 학교로 들어갔다. 코로나 터지고 군대갔다가 바로 포스텍으로 갔었어서, 우리 학교 캠퍼스에서는 수업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가히 미친 사람처럼 살았다. 한이 맺혀있었다. 나는 무조건 재미있게 놀아야했고, 대학생이 응당 해야할 것들을 행해야했다. 동아리를 여섯 개 했다. 댄스도 하고, 밴드도 하고, 디제잉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뭐 일주일 내내 스케줄이 박혀있었다. 거기다가 돈도 벌어야 해서 일도 했다. 수업도 들었고, 파티나 술자리도 가야했다. 학교 축제가서 뉴진스도 봐야했다. ‘우주유영’이라고 250명 규모의 네트워킹 행사도 치렀다.


샤워하면서 코피가 흘렀다. 그러려니했다. 다음날 샤워할 때 또 흘렀다. 피곤하구나 했다. 그런데 3일 째에도 코피가 나길래 이거 무슨 문제가 생긴건가 무서웠다. 다행히 지금까지 별 이상은 없지만 그 정도로 피곤하게 살았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했나 싶다.

그렇게 정신놓고 살다가도 문득 나의 커리어와 야망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다. 리부트 하고 싶었다. 그럴 요량으로 저번 학기에 SOPT에 들어갔다. 당시에 ‘젊고 유능한 야망있는 사람’을 만나고자 했고 간절함이 묻어있었다. 예상치도 못한 게 기회가 될 수 있고, 절실했던 것이 사실 그리 좋은 기회가 아니었을 수 있다. 그러려니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어쨌든, 스타트업은 어렵다. 좋은 제품을 만들 훌륭한 팀이 있어야 한다. ‘그냥 적당히 어쩌고 저쩌고’ 하고 싶지 않다. 큰 임팩트를 만들고 싶다. 확신이 들지 않아서 시작하지 못했다. ‘시작하지 못함’에 초점을 맞춰버리면 책상 앞에서 ‘이렇게 해야한다’ 논평만 하는 헛똑똑이처럼 스스로가 느껴진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기준 충족이 안되었으니 출발을 못한 게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시동이 안 걸렸던 이유

나는 ‘어떤 문제든 그냥 그걸 해결하는게 좋아’ 같은 인간군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가 공감하는 문제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어떻게 바꿔낼 것인지에 대한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구체적으로 그려져야 한다. 그래야 딥다이브가 가능한 사람이다.

세상이 너무 편리했다. 딱히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보이지 않았고, 뭔가 느껴지더라도 ‘이걸 내가 했을 때의 경쟁우위가 뭔데? 이거 왜 내가 해야하는데?’ 라고 물었을 때 답할 수 없었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더라도 그걸 10년이라는 시간으로 줌아웃해서 봤을 때 살아남는 회사는 몇 없다.

모든 것을 예측하고 들어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decade 관점에서 잘 해내는 플레이어가 되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 ‘되면 좋고 아님 말고, 경험쌓지 뭐’ 이 생각의 반대 극단에 있는 것이다.


1. 내가 공감하는 문제인가?
2. 자체 개발해서 해결가능한 문제인가?
3. Day1부터 매출이 있는 모델인가?
4.


위 기준을 만족하는 도메인이 ‘생산성’ 중에서 ‘할 일 및 일정 관리’ 장르였다. 나는 되게 다양한 일을 동시에 진행하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어떤 일을 진행 중인 지, 어떤 일을 완료했는 지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애플 캘린더/미리알림은 당시에 분리되어 있었고, 루틴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게이미피케이션’을 접목시켜서 성취감을 고취시키고, 대쉬보드를 제공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면 어떨까? 라고 생각했다. 초기 이름은 ‘Plannery’였고, 그게 나중에 ‘NutShell’로 바뀌었다.

그런데 왜지. 재미가 없었다. 이게 있다고 해서 누군가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뀔 것 같지도, 반대로 말해서 없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 같지 않았다. Pain Killer와 Vitamin. 이 두 개로 나눠서 생각하는 거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데 Vitamin 중에서도 굉장히 마이너한 Vitamin같았다.

그리고 ‘Why now’도 모르겠었다. 현재 Gen AI에 돈이 몰리고 기술이 계속해서 발전되며 민주화되고 있는데, 이를테면 ‘축제’가 열리고 있는데 나는 저 멀리 뒷골목에서 혼자 다른 것에 골몰하려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엘리트 비즈니스다.

능률에 몰빵을 치는거다. 적은 인원이면 소통비용이 구조적으로 적어진다. 의사결정도 빠르다. 이게 스타트업의 본질이다. 노동에 대한 대가가 Monthly Income이 아니라 Equity가 되기 때문에 열심히 할 동인도 충분하다. 주에 몇 시간까지 일해야한다? 뭐 이런 논의가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고 무조건 목표 하나보고 달리는 거다.

블로그에 ‘할 것’들을 많이 적어놓았던 것 같다. 다짐하듯.. 근데 그거는 별 의미 없는 것 같고 그냥 어떤 거 했는 지 기록한 게 더 유익한 것 같다.


함께할 사람을 찾았다. 뭐 ‘찾아야겠다’하고 찾은 건 아니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다. 똑똑하다. technical한 사람이다. 친하고, 일년 반을 같은 공간에서 살았다. 난 사업 개발, 디자인 자신있고 코파운더는 만들고 구현하는거 자신있다. 우선 두 명이서 출발하고자 한다.

무엇을 할 지 정했다. 생산성 B2C SaaS다. 여러 정보와 생각들을 정리해서 자료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돕는다. 브레인스토밍에 적합한 Figma와 같은 ‘캔버스 뷰’에서 여러 자료들과 생각을 펼쳐놓고 정리할 수 있다. 정리한 정보들은 구조에 맞게 Notion처럼 저장되고, 자산화시킬 수 있다.


뼈맞음

Surveys might help to understand the pain that your customer is going through, but they will never help you figure out how to solve the pain.


그렇다. 문제를 포착했으면, 그리고 그 문제를 겪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 일단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 만들어내야 한다. 최대한 빨리! 그리고 나서 그걸 들고 돌면서 사람들에게 물어봐야한다.

‘만약 내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어봤다면 그들은 더 빠른 말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 Henry Ford

이 말의 의미를 이제 알겠다. 사람들에게 솔루션을 물으면 안된다. ①불편한 상황을 서베이하고, ②해당 문제가 해결할만 하다라는 결론이 나면 빠르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디자인하고 만들고 있다. 그 이후에 돌아다니면서 ‘이게 당신의 문제를 잘 해결하는 지’에 대해 묻고 PMF Survey를 진행하는 이터레이션을 돌아야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만드는 역량은 오롯이 팀에 달려있다. 나는 스스로를 ‘UX에 까다로운 유저’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고민을 많이 담은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이 장르는 UX가 중요하다. 아름다워야 하고 직관적이어야 하며, 편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중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나와 코파운더는 그렇기에 좋은 소프트웨어 제품을 만들어낼 역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년엔 가파른 성장을 해내고 싶다. 공회전을 멈추고 앞으로 질주하면서 나도 사실은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증명해보이는 것이 목표다. 그렇게 커리어적 불안과 경제적 불안에서 조금은 멀어지며,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크게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면서 말이다.


전역할 때 즈음 세운 계획에 2024년에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를 하고 본격적으로 창업에 뛰어들고 싶다고 적어놓았다. 그리고 올해 초에도 2024년이 나에게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고, 올해도 방향 못잡고 허우적대면 그냥 나는 털어버리고 다른 쪽으로 알아봐야겠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반점이든 마침표든 찍는 계기가 분명해야한다. 흐지부지되는 건 그동안의 시간이 포장되지 않는 것이니 나에게 손해이다.


시간 빠르다. 작년 12월 15일에 이 집에 들어왔고 벌써 3주 뒤면 만 1년이 된다. 혼란과 헤멤 끝에 결실이 있다면 ‘지옥길을 걷고 있다면 계속해서 전진하라’라는 말에 수긍하며 나아갈 것이다.

Last updated on

2024. 11. 25.

Comment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