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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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거 왜 하고 있나?
나 이거 왜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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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은 기본적으로 문제 해결이라 한다. 문제를 해결하고 얻은 그 가치 증분을 돈으로 바꿔서 수익을 만드는 일. 그럼 결국 세상이 최적화된다. 인간 본성을 활용하여 세상을 진보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힘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기나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 통틀어서 살기가 가장 편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겪고 있는지.. 자꾸 '문제 문제..'거리는 것이.. 뭔가 사소한 것을 엄청 부풀려서 표현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겪는 공통된 문제라고 한다면.. 돈이 없는게 모두에게 문제이긴 하지ㅋㅋ
진짜 문제라고 하면 - 암이나 치매, 노화, 소득 불평등 이런걸 문제라고 불러야하는거 아닌가? 욕구가 곧 수요에 비례하니까, 생존 욕구가 가장 클 테고, 그럼 그게 가장 큰 문제일 것. 그 다음으로는 뭐 식욕/성욕/수면욕인데 이건 많은 비즈니스 주체들이 나눠서 해결하고 있는 부분들이다. (요식업, 부동산 등등) 그러니까 사실 '문제'라는 프레임에 가두는게 되게 별로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과학 기술이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그럼 '문제'를 풀려면 과학자/연구자를 해야한다.)
또 다른 생각으로는 '사람들이 문제를 잘 알고 있을까?'에 대한 부분. 아이폰이 문제에 의해 탄생했나? Google은? Youtube는?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인간 본연의 수요에 한발짝 더 다가간 것에 가깝다. 인간은 더 빠르고, 즉각적인 것, 쾌락을 수요한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정보를 알고 싶어하고, 상상하기를 좋아하며, 자아실현을 추구한다. 이런 복합적이고 대중적인 갈망들을 더 잘 충족시켜주는 제품과 서비스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바꿀만한 수준의 변화, 혁신의 근간에는 기술적 진보가 있다.
광범위한 수요를 흡수하며 동작하던 비즈니스가, 기술 혁신으로 인해,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 변화를 잘 견디지 못하면 패러다임이 바뀐다. 대부분의 incumbents는 기존 관성과 조직 구조, 레거시 인터페이스 때문에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그래서 기술 혁신 시점에서는 패러다임이 변화할 기회가 생긴다. 노키아가 아이폰에게, TV가 유튜브에게, 이마트가 쿠팡에게.. 다 똑같다.
그래서 난 크게, 1)문제를 최적화하는 단계가 있고, 2)잠재 수요를 포착해서 최적화하는 단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후자가 더 까다롭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playbook대로 하면 된다. (물론 이것도 어렵다) 그러나 후자는 그런게 없다. 일단 기술 혁신과 인프라 보급이 전제되어야하고, 거기서 기회를 보고 그 기술을 활용하여 인간 본연의 수요에 어떻게 다가갈지 자신만의 솔루션을 제안하고 설득해야하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은 연구자들이 한다. 인류 지성의 프론티어를 밀어내는 사람들. 그러나 나는 그 일원이 아니다. 그리고 내 성향상, 남의 문제 푸는것에는 별로 흥미가 없다. 그래서 문제 발굴 - 가설검증 어쩌구..하는 프로세스 따라갈 때 문제 발굴에서 흥미가 안생기면 그냥 시작하기가 싫었다. '이거 왜하지?'라는 생각부터 들었지.
그렇다고 내 자아를 표출하는 일에만 골몰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순수 예술을 할 재정적 여유도 없고,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느꼈다. '유용함'이 있어야 했다. 이를테면, 애플이나 무인양품이 그들만의 미학적 자아를 내뿜으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에게 유용함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싶었다. (근데 애플은 요즘 잘 모르겠다..) 이게 어쩌면 브랜딩이긴한데, 브랜딩은 너무 제품 포장에만 집중하는 어감이라, 내가 브랜딩을 하고 싶은 사람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여기에 대해서 지난 몇 년간 고민한 결론은- 나는 '적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기술, 그 날 것 자체는 대중수용성 내지는 상품성을 지니기 어려울 수 있다. LLM 기술이 ChatGPT라는 서비스로 포장되어서 사용되는 것처럼 말이다. 해당 기술이 인간에게 어떠한 형태로 응용될 수 있는 지를 상상하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사람, 잠재 수요에 한 발짝 가까이 갈 수 있는 연결 지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획자/디자이너/개발자 이 세 가지 포지션 중 하나로 나를 정의내리기 싫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상상하고 표현하는 일'이다.
정규 교과과정이 나를 정확히 측정하지 못했던 지점도 여기라고 생각한다. 좋은 학벌과 지능, 노력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성에 차지 않는 학교 타이틀에 열등감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에게는 자기 합리화 즈음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이건 내가 결과물로 증명해야할 영역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무언가 쓰고 정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때 병원갔다와서 처방전보고 집에서 혼자 처방전 따라만들고 그랬다고 한다..) 동시에, 과거부터 들었던 생각은, '내가 만드는 문서의 본질은 그 안에 담긴 내용인데, 왜 모든 도구들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 집중하고 있지?' 였다. 오래된 문제의식이긴한데 그동안 해결책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생성형 AI를 보고 그 실마리를 찾았다.
생성형 AI는 기술 혁신이라 할 만큼 그 파급력이 크다. API들이 열리면서 인프라가 보급됐고, 성능 대비 비용은 계속 떨어졌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기회가 생겼다. 인간 본연의 수요에 더 가까이 있는, 뛰어난 경험을 제공하는 무언가를 만들면, 보다 넓은 범위에서의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가져왔던 문제의식에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간이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재구성해서 표현하는 과정을, 한단계 진보시킬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Arky라는 새로운 모습의 문서편집 도구를 만들고 있다. 대부분의 AI 활용 도구들이 결과물 생성에 집중하고 있다.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이미지, 영상, 발표자료까지 다 만들어준다. 이런 세상에서, 문서편집 도구를 만든다니?! 시대착오적인거 아닌지 의문이 들 지도 모른다.
나는 지식 작업의 본질이 지금과 같은 '결과물 생성'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AI가 사업계획서에 활용할 정보를 쉽게 찾아줄 수 있지만 사업계획서를 대신 완성해줄 수는 없다. AI가 여러 아이디어를 던져줄 수는 있어도 시나리오를 대신 완성해줄 수는 없다. 검색/정보수집, 번역 등의 단편적인 작업은 현재 AI 도구들로 대체되고 있지만, 긴 맥락이 전제되는 업무는 인간의 손길이 필요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AI와 함께 생각을 전개하는 과정을 위한 공간이 아직 마땅히 없다. 인간의 역할이 작성자에서 지시자로 바뀌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AI 등장 이전에 나온 인터페이스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내용을 편집하고 있다. (Microsoft Word는 1983년에 나왔고, Google Docs는 2006년, Notion은 2016년에 나왔다.)
내용을 검토하고, 분류하고, 융합할 수 있는, 정보의 관계가 눈에 더 잘 보이는 편집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생각 친화적인 공간 말이다. 나는 AI가 우리의 사고력을 증강시키는 방향(Augmented Intelligence)으로 작동하기를 바란다. AI 시대에도 여전히 능동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구, 그것이 Arky가 지향하는 바이다.
Arky는 '편집' 과정을 AI와 가장 유연하게 수행할 수 있는 작업 공간이다. Figma같은 캔버스 UI를 기반으로 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줄 노트보다, 자유로운 연습장이 우리 생각을 다듬는 데에 더 자연스럽다.
사실 처음에 Arky를 디자인할 때는, AI와의 협업을 중심으로 생각하기보다, 우리가 생각을 펼치고 정리하기에 알맞은 모습에 대해 계속 떠올렸다. 그런데 AI와 하게 되는 대부분의 작업 또한 함께 '생각하는 일'이므로, 결국 AI와 협업하기에 좋은 환경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AI 등장 이전 시점에 설계된 인터페이스에 AI를 단순히 얹은(bolt on) 모습으로는 주기 힘든 가치를, Arky는 제공할 수 있다.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식을 편집하고 저장하는 공간이 되는 것과 동시에, 해당 지식들을 자유롭게 내보낼 수 있게 다리를 만든다. 구조화된 지식을 기존 통용되었던 Word, Excel, PPT 등의 레거시 형식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것이다. 지금 Gamma나 다른 AI 도구가 제공하는 기능과 비슷하다.
비유하자면, 예전에는 그릇에서 요리를 하는 느낌이었다. Word나 PPT는 내용을 아름답게 담는 그릇같은 존재다. 하지만 그릇 위에서 요리하면 불편하다. 생성형 AI는 이제 요리를 필요한 그릇에 옮겨담는 것을 쉽게 만들어주었다. 즉, 요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기반이 생겼다. Arky는 그러한 주방이다. Perplexity같은 도구들이 요리에 필요한 재료들을 쉽게 구해다주면, 그것으로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데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단순히 지금의 2D 캔버스 기반 UI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는 더 다양한 인터페이스에서 사용자가 인간이 아닌 존재와 소통하게 될 것이다. 그 방향을 계속 고민할 거다.
이렇게 기술발전을 기반으로, 인류의 지식 생산과 유통 과정을 최적화한다. 내 자아, 미적감각을 세상에 드러냄과 동시에 유용함을 전파한다. 사람들을 설득해낸다. 그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자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어렵다. 외롭고 두렵다. 그래도 재밌다. 무너지지 않고 지속할 힘이 내 안에서 나온다. 나에 대해 의심하고 통찰한 끝에 나를 잘 알게 되어서 그런듯? 나를 아는 것이 가장 먼저다.
해낼 것이다.
창업은 기본적으로 문제 해결이라 한다. 문제를 해결하고 얻은 그 가치 증분을 돈으로 바꿔서 수익을 만드는 일. 그럼 결국 세상이 최적화된다. 인간 본성을 활용하여 세상을 진보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힘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기나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 통틀어서 살기가 가장 편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겪고 있는지.. 자꾸 '문제 문제..'거리는 것이.. 뭔가 사소한 것을 엄청 부풀려서 표현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겪는 공통된 문제라고 한다면.. 돈이 없는게 모두에게 문제이긴 하지ㅋㅋ
진짜 문제라고 하면 - 암이나 치매, 노화, 소득 불평등 이런걸 문제라고 불러야하는거 아닌가? 욕구가 곧 수요에 비례하니까, 생존 욕구가 가장 클 테고, 그럼 그게 가장 큰 문제일 것. 그 다음으로는 뭐 식욕/성욕/수면욕인데 이건 많은 비즈니스 주체들이 나눠서 해결하고 있는 부분들이다. (요식업, 부동산 등등) 그러니까 사실 '문제'라는 프레임에 가두는게 되게 별로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과학 기술이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그럼 '문제'를 풀려면 과학자/연구자를 해야한다.)
또 다른 생각으로는 '사람들이 문제를 잘 알고 있을까?'에 대한 부분. 아이폰이 문제에 의해 탄생했나? Google은? Youtube는?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인간 본연의 수요에 한발짝 더 다가간 것에 가깝다. 인간은 더 빠르고, 즉각적인 것, 쾌락을 수요한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정보를 알고 싶어하고, 상상하기를 좋아하며, 자아실현을 추구한다. 이런 복합적이고 대중적인 갈망들을 더 잘 충족시켜주는 제품과 서비스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바꿀만한 수준의 변화, 혁신의 근간에는 기술적 진보가 있다.
광범위한 수요를 흡수하며 동작하던 비즈니스가, 기술 혁신으로 인해,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 변화를 잘 견디지 못하면 패러다임이 바뀐다. 대부분의 incumbents는 기존 관성과 조직 구조, 레거시 인터페이스 때문에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그래서 기술 혁신 시점에서는 패러다임이 변화할 기회가 생긴다. 노키아가 아이폰에게, TV가 유튜브에게, 이마트가 쿠팡에게.. 다 똑같다.
그래서 난 크게, 1)문제를 최적화하는 단계가 있고, 2)잠재 수요를 포착해서 최적화하는 단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후자가 더 까다롭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playbook대로 하면 된다. (물론 이것도 어렵다) 그러나 후자는 그런게 없다. 일단 기술 혁신과 인프라 보급이 전제되어야하고, 거기서 기회를 보고 그 기술을 활용하여 인간 본연의 수요에 어떻게 다가갈지 자신만의 솔루션을 제안하고 설득해야하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은 연구자들이 한다. 인류 지성의 프론티어를 밀어내는 사람들. 그러나 나는 그 일원이 아니다. 그리고 내 성향상, 남의 문제 푸는것에는 별로 흥미가 없다. 그래서 문제 발굴 - 가설검증 어쩌구..하는 프로세스 따라갈 때 문제 발굴에서 흥미가 안생기면 그냥 시작하기가 싫었다. '이거 왜하지?'라는 생각부터 들었지.
그렇다고 내 자아를 표출하는 일에만 골몰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순수 예술을 할 재정적 여유도 없고,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느꼈다. '유용함'이 있어야 했다. 이를테면, 애플이나 무인양품이 그들만의 미학적 자아를 내뿜으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에게 유용함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싶었다. (근데 애플은 요즘 잘 모르겠다..) 이게 어쩌면 브랜딩이긴한데, 브랜딩은 너무 제품 포장에만 집중하는 어감이라, 내가 브랜딩을 하고 싶은 사람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여기에 대해서 지난 몇 년간 고민한 결론은- 나는 '적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기술, 그 날 것 자체는 대중수용성 내지는 상품성을 지니기 어려울 수 있다. LLM 기술이 ChatGPT라는 서비스로 포장되어서 사용되는 것처럼 말이다. 해당 기술이 인간에게 어떠한 형태로 응용될 수 있는 지를 상상하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사람, 잠재 수요에 한 발짝 가까이 갈 수 있는 연결 지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획자/디자이너/개발자 이 세 가지 포지션 중 하나로 나를 정의내리기 싫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상상하고 표현하는 일'이다.
정규 교과과정이 나를 정확히 측정하지 못했던 지점도 여기라고 생각한다. 좋은 학벌과 지능, 노력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성에 차지 않는 학교 타이틀에 열등감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에게는 자기 합리화 즈음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이건 내가 결과물로 증명해야할 영역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무언가 쓰고 정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때 병원갔다와서 처방전보고 집에서 혼자 처방전 따라만들고 그랬다고 한다..) 동시에, 과거부터 들었던 생각은, '내가 만드는 문서의 본질은 그 안에 담긴 내용인데, 왜 모든 도구들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 집중하고 있지?' 였다. 오래된 문제의식이긴한데 그동안 해결책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생성형 AI를 보고 그 실마리를 찾았다.
생성형 AI는 기술 혁신이라 할 만큼 그 파급력이 크다. API들이 열리면서 인프라가 보급됐고, 성능 대비 비용은 계속 떨어졌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기회가 생겼다. 인간 본연의 수요에 더 가까이 있는, 뛰어난 경험을 제공하는 무언가를 만들면, 보다 넓은 범위에서의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가져왔던 문제의식에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간이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재구성해서 표현하는 과정을, 한단계 진보시킬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Arky라는 새로운 모습의 문서편집 도구를 만들고 있다. 대부분의 AI 활용 도구들이 결과물 생성에 집중하고 있다.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이미지, 영상, 발표자료까지 다 만들어준다. 이런 세상에서, 문서편집 도구를 만든다니?! 시대착오적인거 아닌지 의문이 들 지도 모른다.
나는 지식 작업의 본질이 지금과 같은 '결과물 생성'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AI가 사업계획서에 활용할 정보를 쉽게 찾아줄 수 있지만 사업계획서를 대신 완성해줄 수는 없다. AI가 여러 아이디어를 던져줄 수는 있어도 시나리오를 대신 완성해줄 수는 없다. 검색/정보수집, 번역 등의 단편적인 작업은 현재 AI 도구들로 대체되고 있지만, 긴 맥락이 전제되는 업무는 인간의 손길이 필요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AI와 함께 생각을 전개하는 과정을 위한 공간이 아직 마땅히 없다. 인간의 역할이 작성자에서 지시자로 바뀌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AI 등장 이전에 나온 인터페이스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내용을 편집하고 있다. (Microsoft Word는 1983년에 나왔고, Google Docs는 2006년, Notion은 2016년에 나왔다.)
내용을 검토하고, 분류하고, 융합할 수 있는, 정보의 관계가 눈에 더 잘 보이는 편집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생각 친화적인 공간 말이다. 나는 AI가 우리의 사고력을 증강시키는 방향(Augmented Intelligence)으로 작동하기를 바란다. AI 시대에도 여전히 능동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구, 그것이 Arky가 지향하는 바이다.
Arky는 '편집' 과정을 AI와 가장 유연하게 수행할 수 있는 작업 공간이다. Figma같은 캔버스 UI를 기반으로 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줄 노트보다, 자유로운 연습장이 우리 생각을 다듬는 데에 더 자연스럽다.
사실 처음에 Arky를 디자인할 때는, AI와의 협업을 중심으로 생각하기보다, 우리가 생각을 펼치고 정리하기에 알맞은 모습에 대해 계속 떠올렸다. 그런데 AI와 하게 되는 대부분의 작업 또한 함께 '생각하는 일'이므로, 결국 AI와 협업하기에 좋은 환경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AI 등장 이전 시점에 설계된 인터페이스에 AI를 단순히 얹은(bolt on) 모습으로는 주기 힘든 가치를, Arky는 제공할 수 있다.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식을 편집하고 저장하는 공간이 되는 것과 동시에, 해당 지식들을 자유롭게 내보낼 수 있게 다리를 만든다. 구조화된 지식을 기존 통용되었던 Word, Excel, PPT 등의 레거시 형식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것이다. 지금 Gamma나 다른 AI 도구가 제공하는 기능과 비슷하다.
비유하자면, 예전에는 그릇에서 요리를 하는 느낌이었다. Word나 PPT는 내용을 아름답게 담는 그릇같은 존재다. 하지만 그릇 위에서 요리하면 불편하다. 생성형 AI는 이제 요리를 필요한 그릇에 옮겨담는 것을 쉽게 만들어주었다. 즉, 요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기반이 생겼다. Arky는 그러한 주방이다. Perplexity같은 도구들이 요리에 필요한 재료들을 쉽게 구해다주면, 그것으로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데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단순히 지금의 2D 캔버스 기반 UI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는 더 다양한 인터페이스에서 사용자가 인간이 아닌 존재와 소통하게 될 것이다. 그 방향을 계속 고민할 거다.
이렇게 기술발전을 기반으로, 인류의 지식 생산과 유통 과정을 최적화한다. 내 자아, 미적감각을 세상에 드러냄과 동시에 유용함을 전파한다. 사람들을 설득해낸다. 그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자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어렵다. 외롭고 두렵다. 그래도 재밌다. 무너지지 않고 지속할 힘이 내 안에서 나온다. 나에 대해 의심하고 통찰한 끝에 나를 잘 알게 되어서 그런듯? 나를 아는 것이 가장 먼저다.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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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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